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문단 편집) == 진행 == 당초 계획은 혁명전쟁으로 인하여 파리에 배치된 군대를 활용하여 정부에 압력을 가한 뒤 총재들의 사임을 이끌어내고 원로원과 500인 의회를 해산시킨 뒤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것이었다. 공화국 8년 브뤼메르 18일에 나폴레옹은 동생 뤼시앵 보나파르트를 시켜 원로원에게 파리 시내에서 자코뱅이 주도하는 테러가 자행됐다고 보고했고, 이를 구실로 파리에 주둔중이던 군대의 지휘권을 맡는 한편으로 모든 정부기관을 파리 근교의 생클루(Saint-Cloud)로 이전시켜버린다. 이어 시에예스를 비롯한 5인의 총재 중 세 명이 사임한다. 하지만 남은 두 명은 열혈 자코뱅파였기 때문에 사임을 거부하였으며 결국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체포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onaparte_in_the_18_brumaire.jpg]] 한편 다음날이 되자 원로원과 500인 의회는 슬슬 이 사건이 나폴레옹의 주도하에 진행되는 쿠데타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소수의 척탄병과 함께 500인 의회로 진입하여 연단에 올라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연설을 했다. 하지만 500인 의회는 나폴레옹에게 극도로 적대적이었고 단순히 야유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멱살을 잡고 신체적인 공격을 가하기까지 했다.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나폴레옹은 욕설을 듣고 멱살까지 잡히자 크게 당황하여 횡설수설했고, 잠시 의회 밖으로 쫒겨났다. 그가 무력하게 낙담하는 것을 본 병사들도 나폴레옹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찰나, 이런 상황을 수습한 것은 바로 나폴레옹의 동생이자 당시 500인 의회 의장인 뤼시앵이었다. 그는 혁명 초기 열혈 자코뱅 지지세력이었기 때문에 자코뱅과도 친목이 있었다. [[무력]]이 필요하다고 여긴 그는 직접 칼을 빼들고 나폴레옹을 겨누면서 '''"집권 이후 혁명의 정신을 배반한다면 내가 먼저 형을 처단하겠다!"'''라고 외치며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고, 그 순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역시 다시 정신을 차려서 병사들에게 "내가 너희들을 믿어도 되겠는가?"라고 외치며 병사들을 고무시켰다. 그와 함께 [[조아킴 뮈라]]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병사들을 이끌고 의회로 진입하여 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내어 해산시켜버리면서 쿠데타는 성공리에 종결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